기획특집-부처님 오신날 룸비니 동산에 서서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04-02-20 조회수 : 2823
 
구룡사 정우스님

인간의 존엄성 일깨운 아늑한 희망의 솟음터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은 현재 네팔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수백년 넘은 고목과 아쇼카왕의 석주가 찾는 이들을 반긴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은 현재 네팔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수백년 넘은 고목과 아쇼카왕의 석주가 찾는 이들을 반긴다.

햇빛 따사로워 꽃들이 제몸 단장하고 새들은 찰랑거리는 흰 물결 차며 노래할 때 마야부인은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두루 거닐며 비길 데 없는 동산의 아름다운 봄날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때 ‘바라차라’(無憂樹)라 이름하는 나무가 있어 마야부인의 발길을 유혹했다. ‘바라차라’는 그 자태가 마치 공작의 목과 같았고 꽃이 향기롭고 묘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다. 마야부인이 ‘바라차라’의 가지를 잡으니 대광명이 온누리를 비추고 만물에 서응(瑞應)이 감돌았다. 곧바로 산기(産氣)를 느끼어 옥같은 태자를 낳으니 제석천이 흰 꽃단으로 태자를 받고 아홉 마리의 용이 정수를 뿜어내 관정(灌頂)했다. 태자는 어머니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나와 사방으로 7보를 걷고 한손으로 하늘을, 또 한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소리높이 외쳤다.

“이 세간 가운데 내가 가장 높구나.
나는 오늘부터 목숨받는 일이 끝났네.”

사해중생(四海衆生)의 어버이이자 인류의 대성자 부처님은 이렇게 룸비니 동산에서 강탄하셨다. 실로 서력 기원전 566년 4월 8일의 일이다.
룸비니’는 마야부인의 친정어머니 이름이다. 《불본행집경》에 의하면 제바타하성의 왕이자 마야부인의 아버지 선각장자가 아름다운 숲동산을 만들어 이를 자신의 부인 이름을 따 ‘룸비니’라 했다고 전해진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
따라서 경전과 옛문헌에는 룸비니가 매우 아름다운 동산이었음을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온갖 목청 고운 새와 향기가 진동하는 꽃들과 맑은 샘물이 솟는 룸비니를 그래서 ‘화원’(花園)이라고도 불렀다.
때문에 경전 속에 나오는 이미지를 갖고 룸비니를 찾으면 실망할지 모른다. 오늘의 룸비니는 동산이나 화원과는 격을 달리하는 한적한 시골의 벌판같은 느낌을 던져준다. 그러나 누구든지 룸비니의 어느 곳에 와 서더라도 편안함이 있을게다. 거대한 히말라야의 만년설(萬年雪)을 항상 머리에 이고 있는 룸비니는 순례객들을 충분히 아늑한 분위기로 몰고 간다. 봄의 땅에서 겨울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오묘함도 자리하고 있으니 예사로운 성지가 아니다.

이곳에 부처님이 탄생하시자 하늘에서도 서른 두가지의 서응을 내렸다고 《수행본기경》‘강신품’은 전하고 있다.
몇가지만 소개하면 더러운 냄새나는 곳이 향기냄새로 바뀌었고 동산에서 저절로 기이하고 단 과일이 났으며 온 나라의 마른 나무에서 꽃과 잎이 돋아났다. 해와 달과 별이 서서 가지 않고 강탄을 축복했으며, 귀머거리·소경·벙어리·곱사등이 등 온갖 질병이 모두 나았다 등등이다.

인류의 대스승이 오신날에 우주만물이 하나로 화답하고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룸비니는 이처럼 희망과 평화와 행복을 상징하고 있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그래서 중생의 희망이요, 세계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의미한다. 하지만 룸비니는 부처님에겐 무상의 고통을 일깨우는 시련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어머니 마야부인이 이레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룸비니에 서서 ‘어찌하여 부처님처럼 훌륭하고 거룩하신 분이 이땅에 태어나서 일주일만에 어머니를 잃을 수 밖에 없었을까?’의문을 가져보았다. 중생을 계도할 부처님이 태어나셨는데 어머니는 왜 세상을 떠났을까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게 그렇거니와 난 그 해답이 《선가귀감》에 있다고 보고 있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이 땅에 출현한다 함은 ‘바람불지 아니하나 파도가 일어나는 이치’다”란 말은 내 의문을 함축적으로 풀어주는 명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머니의 죽음은 당시 미완(未完)의 여래(如來) 싯다르타에게 무상을 절감케 한 큰 가르침이었고 부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 계기였던 셈이다.





정우스님은 매년 신도들과 함께 인도 성지순례에 나서며 불심을 돋우고 있다.

대성석가사 보며 자부심 느껴
룸비니의 마야데비 템플(摩耶夫人堂) 지하실에 대리석으로 새겨놓은 탄생상을 들여다보면 그래서 감격이 더 물밀 듯 밀려온다. 마야부인이 오른 손으로 ‘바라차라’가지를 잡고 있자 옆구리에서 부처님이 태어나는 모습을 새긴 것인데 행복하였지만 불운한 한 여인의 단면을 보는 것같아 한켠 가슴이 저리다.

탄생상을 보고 난 뒤 마야데비 템플의 발코니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부처님 탄생 당시를 회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부처님이 태어나시자 용이 나타나 목욕을 시켰다는 연못은 네귀가 반듯해 맑은 물이 찰랑찰랑하다. 눈을 좀 멀리 들면 참으로 아름다운 대평원의 잔디밭을 중심으로 옛 카필라국의 농경사회가 전개되는 듯 소달구지 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카필라성이 있는 서북쪽, 요즈음 수치로 계산하면 25킬로미터로 60리 거리다. 듬성듬성 숲도 보이고 논길이 계속되는데 마야부인은 만삭의 무거운 몸을 코끼리 수레에 의지하여 저 길을 따라 이곳으로 왔으리라.

룸비니는 지금까지 한번도 번창하였던 일이 없다고 전해진다. 불교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적엔 이곳은 아예 밀림으로 덮여졌다 한다. 그나마 이곳이 부처님 탄생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1896년 발굴단에 의해 마야데비 템플 뒤쪽에 서있는 아쇼카 석주(石柱)가 발견되면서 부터다. 아쇼카 석주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신들에게 사랑받는 인자한 왕(아쇼카를 말함)은 즉위 20년 몸소 이곳에 와서 예배드렸다. 이곳은 석가모니께서 탄생하신 곳이므로 돌을 깎아 마상(馬像)을 만들고 돌기둥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곳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므로 세금을 감면, 생산의 8분의 1만을 부과한다.”
1967년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U Tant)당시 UN사무총장이 이곳을 순례하였다가 보존상태가 엉망인 것에 충격받고 각국에 호소하여 기금을 모으며 개발계획을 만들었으나 기부금 상당액이 증발돼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나마 가꾸어진 것도 우 탄트의 공이라 하겠다.

특히 부처님 탄생지인 이 곳에 한국사찰 대성석가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다. 도문스님의 원력이 빚어내 이루어져 있는 대성석가사는 룸비니를 빛내는 우리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탄생의 성지 룸비니는 현재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수백만평의 땅, 수목이 우거진 풍광, 수백 수천마리의 새들이 룸비니에 노닐며 순례객을 맞이한다. 더욱이 목청 돋우어 뿜어내는 새들의 합창은 이른 아침을 깨우며 순례객들에게 한순간의 방일함마저 경책한다.

난 룸비니의 이런 모습에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룸비니 동산은 다정한 눈빛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부드러운 미소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인정이 담긴 말씀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깨끗한 몸짓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소박한 진심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따뜻한 도량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편안한 고향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온화한 향기로움이었다.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은, 룸비니 동산이었다.

정우스님은 통도사 홍법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했다. 1985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강남구 포이동)를 창건한 이래 일산 여래사 등 20개 도심포교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글은 정우스님이 올해 1월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부처님 성지를 찬탄한 글이다.

발행일 : 2003-05-10
작성일 : 2003-05-07 오후 1:28:36
작성자 : 정우스님/구룡사 주지 /
<출처:만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