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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스님이 은사 홍법 스님에게 올린 ‘은사스님 전상서’ 몇편
* 작성자 : 일해
* 조회수 : 1984
* 작성일 : 2011-11-01 오전 10:01:50 		통도가을6.jpg


은사스님!
태백산에서 그러하셨지요.
이십년만 중노릇 잘해도 통도사 주지할 수 있다고요.
사십년이 되어서야 통도사 주지소임을 보고 있습니다.
사형사제들은 열반에 드신 노스님을 의지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며
다 건강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들 살아들 가고 있습니다.

-『홍법 선사 추모문집』 중에서



정우 스님이 은사 홍법 스님에게 올린 ‘은사스님 전상서’의 한 부분이다.
‘이십년만 중노릇 잘해도 통도사 주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홍법 스님과
정우 스님이 나눈 당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제자를 격려하기 위해 스승이 처방한 약방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극적인 성격에 ‘이상은 높고 힘은 넘쳐’ 좌충우돌하던 정우 스님이 늘 걱정스럽기만 하던 홍법 스님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두 배가 걸렸지만 그날의 당부처럼 출가 40년 만에 정우 스님은 통도사 주지가 되었다.

정우 스님은 2007년 통도사 주지에 취임하던 해, 불교 언론지에 광고 하나를 냈다. 홍법 스님 관련 자료를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홍법 스님의 사진, 법문, 친필 서한 등 어느 한 조각이라도 간절했다.

49세라는 짧은 일기로 세연을 다했던 은사, 그러나 경봉 노스님이 ‘통도사를 팔아서라도 홍법이만은 살려내라’고 호통을 쳤을 정도로 향기가 남달랐던 수행자였다.
밤사이 대중스님들의 고무신을 하얗게 빨아놓고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편안함도 허용하지 않았던 수좌였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도량을 살피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울 정도로 통도사를 사랑했던 우직한 주지였다.

그런 은사를 떠나보낸 지 30년, 정우 스님은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으며 『홍법 선사 추모문집』을 준비했다. 홍법 스님이 유독 사랑했던 통도사에서, 은사의 마지막 소임이었던 통도사 주지를 맡으며 문집을 엮어갔다. 30년 세월을 거슬러 전하는 기나긴 연서요. 전상서였다.


은사스님!
76년도에 어른스님들께서 스물다섯의 정우에게 관음재일 날 대웅전에서 법문하라고 하셔서 신도님들을 상대로 하면 되는 줄 알고 법당에 갔다가 월하 노스님, 벽안 노스님, 일암 노스님, 우송 노스님과 대중스님들이 함께 계신 모습을 보면서 어찌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준비한 시간을 채우고 어른스님들께 참회 드리고 울산포교당으로 달려가서 은사스님께 영웅담을 말씀 드릴 때 스님께서는 웃고만 계셨었지요. 그리고 세월은 훌쩍 삼십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겠습니까?

- 『홍법 선사 추모문집』 중에서


정우 스님은 무려 8페이지에 달하는 ‘은사스님 전상서’를 추모집 말미에 올렸다.
군포교시절부터 도심포교까지 그리고 종회의원을 네 차례나 역임했다는 등 이만큼 당신의 제자가 잘 해왔노라고 아이처럼 자랑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순간을 회고할 때면 행간 사이에 형언할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을 묻어두기도 했다.

대중에게는 자비보살,스스로에게는 태산처럼 우뚝했던 스님
“비빔국수 할 줄 압니까? 입맛 없다 하면 우리 스님께서 비빔국수를 직접 해주셨어요. 석유곤로에 불 피워서 국수 삶고, 거기에 참기름, 고추장, 설탕 넣고…. 참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옷도 많이 해주셨어요.

직접 재봉틀 돌려서 제 승복 만들어주곤 하셨습니다. 또 아침이면 댓돌 위에 놓인 고무신이 늘 빛이 났습니다. 제 신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스님들 신발도 우리 스님이 빨아 하얗게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홍법 스님을 보았던 스님들 모두가 한번 이상은 겪었던 공통 일화이기도 하다.
성수 스님도 1954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홍법 스님과 함께 여름안거를 났는데,
자고나면 깨끗해진 흰 고무신 때문에 한동안 선원이 수런거렸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땀에 찌든 장삼도 툭 던져두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빳빳하게 풀을 먹여
다림질까지 되어 나타났다.

그래서 홍법 스님과 살면 부끄러워서라도 해태심을 낼 수가 없다고 수좌들은 이야기하곤 했다. 본래 홍법 스님은 열여덟에 출가하여 줄곧 선방을 찾아다니던 선객이었다.

그러다 57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이후 운허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으면서 20여년 강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스님은 어디에 있으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학인들에게조차 겸손했던 어른이었고, 학인들이 무엇을 궁금해할까를 먼저 고민해 가르침을 주었던 참스승이었다.

이러한 스님의 모습을 알고 1965년 전국 선원 수좌들이 결성한 청맥회에서 가입을 권유, 당대 선승들과 도반의 연을 맺으며 정진해갔다. 그중 특별히 광덕 스님, 일타 스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일타 스님은 “홍법 스님이 계를 지키는데 하도 진지하고 엄격해서 처음에는 웃음이 날 지경이었고, 나중에는 저러다 제풀에 병이 나지 싶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만큼 홍법 스님은 한 치의 어김없는 참수행자였던 것이다.

“우리 스님은 방에 불을 거의 때지 않으셨어요. 부목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나가서 나무 두 개만 남기고 다 빼버려요. 그러면 부목이 와서 또 넣어요. 그럼 또 빼고 그렇게 실랑이를 만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첫 번째는 삼보정재를 아끼는데 있고, 두 번째는 방이 차가워야 사람들이 안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오면 쓸데없이 수다떨게 되고 공부에 방해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 스님은 당신 신도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 얼음짱 같은 방에 방석 하나 두고 계셨어요.”

“홍법 스님 상좌입니다”, 이 한마디면 오케이
홍법 스님은 신도는 없었지만, 모든 대중이 스님을 흠모했다. 스님이 큰 병을 얻어 생명을 잃어갈 무렵 노스님들은 통도사를 팔아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대중스님들 또한 진심으로 스님의 쾌유를 기원하며 전 대중이 모여 조석으로 기도를 올리곤 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스님은 대중 모두에게 꼭 있어야 할 도반이요, 어른이요, 제자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홍법 스님은 사중에 폐를 끼칠 것을 염려해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끝내 1978년 49세를 일기로 세상의 옷을 벗었다.

흔히 말하듯 큰 업적도 많은 후학을 키운 것도 아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님 다례제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만큼 홍법 스님를 흠모하고 수행자의 사표로 삼고 있는 스님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제가 대중포교 현장에 있을 때 5년 동안 백고좌 법회를 했습니다. 어른스님들을 5년 동안 계속 모시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절하신 스님이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홍법 스님 상좌입니다.’ 하고 인사드리면, 마치 당신의 상좌 대하듯 아니 그보다 더 애틋하게 대하시면서 기꺼이 걸음해주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크게 깨달았습니다. 우리 스님이 얼마나 대단한 어른이셨는지, 살아가면서 더 알게 됐습니다.

스님의 덕화로 이만큼 왔으니 이젠 제가 갚아야죠. 어른스님들의 울타리가 되고 후배스님들의 작은 그늘이 되는 것, 그것이 제 지금 원력입니다.”

홍법 스님은 혼자 있으면 마치 태산처럼 우뚝하고
사람을 대하면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홍법 스님 _ 1930년 출생하였고, 1948년 통도사에서 조계종 전 종정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하였으며, 통도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통도사 주지, 통도사 승가대학장을 역임했다. 1965년 결성된 수행도반 결사체 청맥회원으로도 활동했으며, 1978년 세수 49세, 법랍 31세로 입적했다.

정우 스님 _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1965년 출가해 18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1971년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월정사에서 화엄학을 수학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불교텔레비전 대표이사, 불교방송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85년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를 설립한 이래 일산 여래사 등의 도심사찰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 해외포교당을 열었으며, 2001년 만해대상 포교상을 수상했다.



월간불광 박연진 (불교tv 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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